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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FO

현철해 (나이/북한/김정은/프로필/사망/원수)

by Fact One 2022. 5.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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前 인민무력부 제1부부장 겸 후방총국장, 조선로동당 정치국 위원
현철해
玄哲海 | Hyon Chol Hae
출생
1934년 8월 13일
만주국 길림성 연길현
사망
2022년 5월 19일 (향년 87세)
북한 평양시
국적
 
북한
 
본관
연주 현씨
직업
군인, 정치인
병과
조선인민군 육군
군사칭호
조선인민군 원수
주요서훈
로력영웅(1995)
김정일훈장(2012)

1. 개요

 

북한의 군인, 정치가이다.
.

 

2. 생애

 

1934년 8월 13일, 중국 길림성 연길현에서 림춘추와 함께 빨치산 활동을 한 아버지 현용택(玄龍澤, 1912.
1 ~ 1938)과 어머니 강릉 최씨 최경순(崔京順, 1912.
2.
8 ~ 1987.
11) 사이의 두 아들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연길시의 소학교를 졸업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해방 이후 만경대혁명학원을 다녔다.
1950년 6.
25 전쟁이 발발하자 소위로 임관하여 김일성 중앙경위연대 친위중대에서 복무하였다.
전쟁 이후 김책공업종합대학을 거쳐 루마니아로 유학하여 4년간 공부하였으며 1957년에 귀국하여 당중앙위원회 및 평안남도 당위원회에서 일했고, 1960년대 초에 다시 군문에 들어 총정치국에 배치되어 총정치국 지도원, 부부장을 거쳤다.
1968년 총정치국 조직부 국장에 임명, 조선인민군 소장으로 승진했다.
1968년 김창봉, 허봉학 숙청 사건에 휘말려 군 대좌로 강등당하는 등 잠시 좌절을 겪기도 했지만 이내 1970년 4군단 정치국장에 임명되면서 소장 계급을 되찾았고 1976년 6월, 후방군관학교 교장에 임명되었다.
1986년에 중장으로 진급, 인민무력부 후방총국장에 임명되었으며 1991년 12월 중앙위원회 후보위원으로 선출되었고, 1992년 4월에 상장으로 진급, 1993년 12월, 김일성 시대에 마지막으로 열린 전원회의인 6기 21차 전원회의에서 중앙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었다.
1994년 김일성이 사망한 후 장의위원에 위촉되었으며 1995년 10월 8일, 최고사령관 명령 0065호에 따라 대장으로 진급, 총정치국 조직부국장을 맡았다.
1998년 10기 최고인민회의가 다시 선거되자 대의원으로 선출되었으며 이후 11기, 12기 대의원으로 계속 선출되었다.
1994년 11월, 군사대표단 단장으로 캄보디아, 라오스, 베트남을 순방하였으며 1995년 9월에 중국에 군사대표단 단장으로 다녀오기도 했다.
1995년 10월 7일, 조선로동당 창건 50주년 로력영웅 칭호를 받았다.
1995년 2월, 오진우 장의위원, 1995년 7월, 김봉률 장의위원, 1997년 2월, 최광과 김광진 장의위원을 지냈다.
공식 서열은 그리 높지 않은 편이었으나 김정일의 현지시찰, 해외순방, 정상회담에 빠짐없이 모습을 드러내는 핵심 측근 중 한 사람으로 선군정치를 논할 때 빠질 수 없는 사람이었다.
2005년 10월, 연형묵 장의위원을 지냈으며 2009년 3월, 국방위원회 국장에 임명되었다.
사망 이후 김정은의 후계자 시절 스승이었다는 주장이 갑자기 유포되기 시작했으나 정작 그가 사망하기 이전까지 어디에도 찾을 수 없던 정보이며 마지막으로 공개석상에 나온 2021년 7월 7차 로병대회 때도 일언반구도 안되던 것이 그가 사망하면서 연합뉴스 보도를 시작으로 갑자기 확산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설령 사실이라고 쳐도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그 어떠한 증거가 나온 적은 없다.
이후 총정치국 행정부국장, 상무부국장을 거쳐 2010년 5월에 국방위원회 국장에 임명되었으며 2010년 9월에 김정은의 후계구도 구축을 위해 열린 제3차 당대표자회에서 중앙위원회 위원으로 재선되었다.
2010년 11월, 조명록 장의위원을 지냈으며 2011년 김정일이 죽은 후 당연히 장의위원으로 위촉되었고 2012년 김정일 훈장을 받았다.
김정은 시대에도 중용되어 인민무력부 제1부부장 겸 후방총국장에 임명되었고 2012년에 개최된 제4차 당대표자회의에서 정치국 위원,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는 한편 군 차수로 진급하였다.
2013년 12월, 김국태 장의위원을 지냈다.
한동안 김정은의 현지시찰에도 대거 동행하고 각종 보고대회에 참석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보였으나 나이가 나이인지라 2013년에 접어들면서 활동이 뜸해지기 시작하더니 2014년 이후부터는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기 시작했다.
2015년 11월 리을설이 죽은 후 다시 장의위원이 되었고 2016년 4월, 김영춘과 함께 인민군 원수로 진급했다.
2016년 5월 조선로동당 7차 당대회가 개최되면서 다시 중앙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었다.
북한 보도에 따르면 나중에 국방성 총고문으로 물러나서 지냈던 모양이다.
하지만 이런저런 명예는 높아져도 공식석상에 나오질 않았기 때문에 통일부에서도 현철해의 생사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고 할 정도로 생존 여부가 불투명한 상황이었으며 2021년 1월 8차 당대회에서도 중앙위원회에서 탈락하는 등 죽은 게 아니냐는 추측이 더해지고 있었는데 2021년 7월, 제7차 로병대회에서 매우 오랜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근데 치매가 왔는지 김정은조차 알아보지 못하고 아주 맛이 간 모습을 보였다.
이 기사와 이 기사의 사진들을 보면 김정은이 살갑게 대해 주는데도 시선조차 마주치지 않고 멍때리고(.
) 있다.
한때 '김정일의 남자' 소리를 들을 정도로 지도부 공식 수행을 가장 많이 한 군인이었는데 세월이 무상할 지경.
저 동네에서 숙청당하지 않는 게 어디겠냐만.
2022년 5월 19일 9시, 다발성 장기 부전으로 인하여 87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당중앙위원회, 당중앙군사위원회, 국무위원회,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는 공동명의로 부고를 발표,"주체혁명위업계승의 중대한 력사적전환기에 현철해동지는 공화국무력의 최고지도기관들에서 중대한 책무에 성실하면서 경애하는 김정은동지의 유일적령군체계가 전군에 확고히 뿌리내리도록 하였으며 인민군대가 수령의 혁명위업의 충직한 계승자인 김정은동지만을 알고 오직 김정은동지의 령도만을 받는 군대로, 조선로동당의 충실한 혁명적무장력으로 영예로운 위훈사를 빛내여나가도록 하는데 모든 지혜와 정력을 다 바치였다.
현철해동지는 수령에 대한 절대적인 충실성과 투철한 혁명적원칙성, 조국과 인민에 대한 헌신적복무정신과 결곡한 품성으로 하여 인민군장병들과 당원들, 인민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았다.
생애의 마지막순간까지 위대한 김일성-김정일주의위업에 무한히 충실하고 오직 한마음 당을 따라 혁명의 한길을 곧바로 꿋꿋이 걸으며 우리 당건설과 혁명무력의 강화발전에 지울수 없는 뚜렷한 공적을 세운 유능한 군사정치활동가인 현철해동지의 서거는 사회주의건설의 전면적발전과 조국의 자주적통일을 위하여 힘차게 투쟁하고있는 우리 당과 인민, 군대에 있어서 보상할수 없는 손실로 된다.
"라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북한은 코로나 와중에도 국장 거행을 결정하였으며 현철해의 부고는 로동신문 1면에 게재되었다.
5월 20일, 김정은이 정치국 상무위원들, 정치국 위원들, 정치국 후보위원들, 당중앙군사위원회 위원들, 국방성 관계자들 및 군종사령관, 군단장, 정치위원들을 거느리고 직접 조문하였다.
무척이나 침통한 표정으로 눈시울을 붉히고 가족들을 만나 위로하는 등 현철해와 관계 역시 돈독했던 것으로 보인다.
5월 22일, 영결식이 거행됐고 김정은과 정치국 상무위원들이 직접 관을 메는 파격적 대우를 해줬다.
박정천의 애도사 이후 시신은 애국렬사릉에 국방성 총고문, 조선인민군 원수 직함으로 김영춘 옆자리에 묻혔다.

 

3. 장의위원회 구성

 

  • 위원장: 김정은.
  • 위원: 최룡해, 조용원, 김덕훈, 박정천, 리병철(이상 비서국 비서 겸 정치국 상무위원), 리일환, 정상학, 오수용, 태형철(이상 비서국 비서), 김재룡, 김영철, 정경택, 박정근, 림광일, 오일정, 허철만, 박태덕, 김형식, 유진, 박명순, 리철만, 김성남, 전현철, 양승호, 주철규, 리선권, 리태섭, 김영환(이상 정치국 위원 및 후보위원), 강윤석(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 리성학, 박훈, 김성룡(이상 내각 부총리), 박용일(조선사회민주당 중앙위원장,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 주창일, 리두성, 강순남, 김봉철, 리창성, 김영광(당력사연구소장), 박정남, 리히용, 김조국, 홍승무, 조영철, 장광명, 김동일, 신룡만, 문경덕(평북비서), 안금철(평남비서), 박창호(황북비서), 박성철(황남비서), 강봉훈(자강도비서), 김수길(강원도비서), 김철삼(함북비서), 리정남(함남비서), 리태일(량강도비서), 리재남(남포비서), 신영철(라선비서), 장영록(개성비서), 리명수, 최두용(총참모부 제1부총참모장 겸 작전총국장), 김정관, 권태영, 김성기, 조경철, 박영일, 리창호, 주동철, 김경룡, 신기철, 방두섭, 양동훈, 리동춘, 김상갑, 김광혁, 리철, 김철근, 윤병권, 정명도, 안지용, 김영복, 오병철, 김도운, 장일건, 최배식, 최권식, 김명식, 김광혁, 김정길, 박수일, 려철웅, 박광주, 최길룡, 리봉춘, 최광일, 리경철, 최춘길, 김학철, 송영건, 고명수, 고인철, 송석원, 기영준, 김정철, 김철히, 홍철웅, 오정수, 김성철, 김창국, 엄주호, 리영철, 김봉호, 박영관, 유광우, 안영식, 함효식, 김영을, 한명선, 김철남, 김경훈, 한표섭, 리홍광, 황철주, 림대성, 리성민, 리정선, 정철호, 정경일, 정동철, 김광일, 곽창식, 서홍찬, 김복남, 림영철, 심홍빈, 최광준, 리성렬, 김용호, 림광웅(민용항공총국장), 박태성, 김영남, 고길선(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서기장), 오동일, 송기철, 장기호, 김유일(전력공업상), 전학철(석탄공업상), 김충걸(금속공업상), 마종선(화학공업상), 장춘성(철도상), 강종관(륙해운상), 김철수(채취공업상), 한룡국(림업상), 김정남(기계공업상), 왕창욱(원자력공업상), 주용일(정보산업상), 서종진(건설건재공업상), 리혁권(국가건설감독상), 송춘섭(수산상), 리충길(국가과학기술위원장), 김승진(국가과학원장), 임경재(도시경영상), 김승두(교육위원장), 김일국(체육상), 채성학(중앙은행장), 리철산(중앙통계국장), 김금철(내각사무장), 차명남(중앙재판소장), 김충성(자원개발상), 김광일, 장경일(경공업상), 임학원, 고정범(재정상), 윤정호(대외경제상), 김성준(국토환경보호상), 박혁철(상업상), 최경철(보건상), 승정규(문화상), 강권일, 문철(사애청 중앙위원장), 박인철, 한종혁, 김정순.

 

4. 여담

 

  • 아버지 현용택(玄龍澤)은 김일성 부대의 빨치산으로 김정숙이 있던 중대의 정치지도원으로 활동하다가 1938년 임강현(臨江縣)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 부인 최금련(崔今蓮)과의 사이에 외아들 현성준(玄成俊, 1965 ~ )을 낳았다.
  • 그 외의 가족으로 전 함경남도 책임비서 겸 인민위원장을 지낸 형 현철규(玄哲奎, 1932 ~ )가 있다. 현철규의 장남인 현성일(玄成日, 1959. 2. 2 ~ )은 김일성종합대학 영문학부를 졸업하고 주 잠비아 북한대사관의 3등 서기관으로 일하다가 1996년 탈북하여 대한민국에 정착하였다. 현성일은 이후 1999년 한국외국어대학교 정책과학대학원에서 북한학 전공으로 외교안보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2006년에 경남대학교 대학원에서 정치외교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여 북한 연구자로 활동하였다. 이에 북한에 남아 있던 현철규는 아들 관리를 못한 죄로 경질되었다.
  • 2018년 8월, 김영춘 사망 이후로 조선인민군 유일의 조선인민군 원수칭호 보유자 기록을 가졌으나 2020년 10월, 리병철과 박정천이 원수계급을 받으면서 기록이 깨졌다. 이후 두 사람이 원수계급을 박탈당하면서 다시 유일한 원수가 되었으나 2022년 부로 리병철, 박정천이 원수계급을 다시 받으면서 해당 타이틀을 잃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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